슬펏던 날들

장남이 하는 일

두무동 2009. 4. 7. 16:48

장남이 하는 일  |  글(사진) 2009-02-20 13:05


장남이 하는 일

 

두고 온 고향 선산  풀이 나면 게으르다 하실까 싶어

무딘 낫으로 뜯고 뜯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일찍 가신 아버님

저에게 주신 은혜의 정들은 너무 컷습니다.

철 들었다 하지만 시근은 반도 안 들어 저를 버리고 가신 아버지.

지금 저는 해도 저물었고 막차도 지나가버린 신작로를

쳐다보다 이제 안채 청에서 혼자 상을 차립니다.

저만 알고, 할머니를 뵈온적 없는 손부 내자는

오늘 종일 움직임이고 아직도 일이 끝나 보이질 않습니다.

 

저를 보고파 하시다 생전 오늘 가신 할머니,

병풍과 촛불은 바람이 흔들고

질상의 향내는 문 연 청 마루에 가득히 맴을 돕니다.

왜 저만 이 길을 가야 합니까?

하늘이 주신 장손 자리 이젠 무겁습니다.

늘 하는 행사라 하시지만 저도 때로는 억울합니다.

세상살이도 이 같습니다.

쉰이 훌쩍 넘은 지금, 아버님이 가신 이쯤에서

저도 그만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자손을 많이 두시고는 자랑으로 하시던 말씀

이제는 제 가슴에 못으로 박힙니다.

 

자시고 갈 것이라고, 정성이라도 보고가실 것 같아

엎드려 굴곡으로 숭륭물을 맙니다.

내일은 일이 있어 몇 백리길을 졸며 가야 합니다.

현조비유인팔계정씨 할머니 오늘은 일찍 모시겠습니다.

초하루 삭막이면 오신다하던 할머니를 이렇게 모십니다.

제의 풍습은 시절 따라 조금씩 변했습니다. 이를 늘리 용서하시고.

수저 놓으신 잔 걸음으로 그리고 생전 영민하신 그 모습으로

돌 좌판에 이름 세긴손 다 둘러 보시고

형편이 어떠해서 아버지 어머니,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도 모르는지 살피십시오.

그리고는 손을 두실 때 장손에게 쥐어주신 사랑의 업보를

골고루 나누어주십시오.

 

대문간의 배웅이 오늘은 너무 쓸쓸합니다.

밤공기가 차서 대문을 닫을까 합니다.

 

 

                 정월 스무 나흗날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