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줄 창작 마당

나무가 운다.

두무동 2010. 1. 16. 16:13

 

 

나무가 운다.  -김명현-

 

해 넘은 먹배이 모리에 까마까치 울고

비와서 구름가린 저녁, 달빛 흐리면

늙은 소나무 한그루 병약해서 운다.

 

장끼가 날아 앞 뒷산으로 숨어 잘들고  

숲 산 바람소리 조용하기가 절 같이 볕 드는 화양華陽

꽃향기 좋아 옛날로 돌아가고픈 내 고향,

인심풍습 날마다 그리운 고향에 올해 같이 추운 동짓달

화양 서루西樓의 갈분디기 웃 당산나무는

오도산吾道山 칼 바람맞고 울고있었다.

 

아랫 당산나무 벼락 맞는 날 인제도 인정도

세월 따라 떠나버린 동네 헛간을 쳐다보며 울었다.

구봉산 중중重重 마루 앞산을 지키던 쌍둥이 당산나무에서

말 타던 벗들 소식 끊겨서 울었다.

 

시끌벅적하던 골안의 사람들 아침저녁으로

울을 넘나들던 인적 끊겨 울었다.

암소나무가 있는 앞산을 보다 가지도 유교적으로  

아래로 뻗은 숫 소나무, 

죽어간 노송의 자리를 보고 하곡을 한다.

 

밤 장대가 때리면 울고 다듬이소리 듣고 싶어

일 년에 한번씩 긍굿 줄 치고 울고

지신 밟던 동내 어르신 그리워 울었다.

 

젊은이들아 안녕, 이제는 안녕히.

동내가 비면 빌고 빌던 암수 당산나무

골안에 있는 서제묫등 일산제 비너티

뒷메에 있는 땅골  섬밧골이 벗하기를 멀리하니

 

뒷가세 대밭양지 마주보는 매봉 비시미 돌아앉은 달음지 

보듬을 수 없는 동내앞 구봉산 건너 갈분디기

마당 많던 동내 한 번더 둘러보고 울었다. 

(To Treno Fevigi Sits Okto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Theodorakis

 

   내 고향  화양은  두메산골  굽이가 아홉구비라 구봉산 앞산에는

200백년이나 묵은 쌍둥이 당산나무가 있었다.

몇 년전  매미 태풍이 불던해 벼락을 맞고 죽었다.

동내의 애환을 잘 알고 있는 신령스러운 당산나무는

두 거루가 쌍으로 자라'아랫당산나무'라 하고 생긴모양이

아랫둥지는 여자의 생식기처럼 오목하여 암 당산나무 였는데

나무가지가 꼬불꼬불 히귀해서 아이들이 올라다니며 나무를

많이 괴롭혔지만 참 아름답고 훌륭한 놀이감 이였다.

황새가 잘 앉는 꼭대기에 올라가면 먼저는 아랫마을 윗마을

동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에는 오목하게 동내를 감싸고 있는

동내 뒷산이 골골이 병풍으로 어깨동무를 한듯하다.

그러던 아랫당산나무와 마주보고있던 서쪽 산에는 또 한그루의

노송이 서 있었는데 윗 당산나무다.

이 노송은 아랫 당산나무가 벼락 으로 죽자 그 이듬해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고사했다.

추측으로는 주변의 밤나무 때문에 죽었을 것으로 보나

이나무는 아래로 굽은 가지가 아랫 당산나무만을 그리워하듯

결국 제작년(2009년)에는 링거병을 

달고 죽었다. 당산나무가 융성하던 시절의 동70~80호였으나

이제는 폐가와 밭농사도 짖지않는 집터만 남았다.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동내.

아이들이 소를 먹이다가도 올라가서 동내를 굽어보며

흔들고 흔들어도 씩씩하던 나무 였지만 수 년사이에

몰사를 하고난 후 동내는 더 쓸쓸해만 보인다.

골병든 몸을 낳게해 주는 영흠이 있는 당산 나무라고 

풍맞은 환자가 빌로 다니던 아래 위의 당산나무

병세 깊은 윗 당산 나무가 한 겨울을 나던 겨울은 무척이나 춥던해

오도산에서 불어오던 겨울바람를 마지막으로 막으며 우는

나무의 윙윙 거림이 동내와 하직하는 곡 소린듯 하였다.

지금은 나무 뿌리도 주저 않앉고 괘목으로도 볼품이 없지만.

화양을 아는 사람들는 고향처럼 그리운 노송들이다.

 

 

화양 나곡에는 천년기념물[수 령 : 500년(천연기념물 289호)]

로 지정된 노송이 또 한거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