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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신춘문예 詩

두무동 2011. 1. 2. 13:25

 

세계일보 2011 신춘문예 詩

파밭 - 홍문숙 

 

비가 내리는 파밭은 침침하다

제 한 몸 가려줄 잎들이 없으니 오후 내내 어둡다

다만

제 줄기 어딘가에 접혀있던 손톱자국 같은 권태가

힘껏 부풀어 오르며 꼿꼿하게 서는 기척만이 있을 뿐,

비가 내리는 파밭은 어리석다

세상의 어떤 호들갑이 파밭에 들러

오후의 비를 밝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파밭이 좋다

봄이 갈 때까지 못 다 미행한 나비의 길을 묻는 일은

파밭에서 용서받기에 편한 때문이다

어머니도 젊어 한 시절

그곳에서 당신의 시집살이를 용서해주곤 했단다

그러므로 발톱 속부터 생긴 서러움들도 이곳으로 와야 한다

방구석의 우울일랑은 양말처럼 벗어놓고서

하얗고 미지근한 체온만 옮기며 나비처럼 걸어와도 좋을,

나는 텃밭에서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한줌의 파를 오래도록 다듬고는

천천히 밭고랑을 빠져나온다.

 

조선일보 2011 신춘문예 詩

유빙(流氷) 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201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신 한림별곡(新 翰林別曲) 김영란

 

전갱이 짠뼈 같은 어젯밤 하얀 꿈도

북제주 수평선도 가로눕다 잠기는

은갈치 말간 비린내 눈이 부신 이 아침

 

바람소리 첫음절이 귤빛으로 물이 들고

닻들도 기도하듯 조용히 기대 누운

갸우뚱 포구에 내린 오십견의 저 바다

 

우리가 불빛들을 희망이라 말할 때

행성처럼 떠도는 비양도 어깨 위에

등 뒤로 가만히 가서 손 한 번 얹고 싶다

 

< 심사평 / 한분순 시조시인 >

 

동아일보 2011 신춘문예 詩

오늘의 운세  권민경

 

나는 어제까지 살아 있는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을 넘어

마지막 날이 예고된 마야 달력처럼

뚝 끊어진 길을 건너

돌아오지 않을 숲 속엔

정수리에서 솟아난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수많은 손바닥이 흔들린다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하나하나 떼어내며 잎사귀 점치면

잎맥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예언, 폭포 너머로 이어지는 운명선

너의 처음이 몇 번째인지 까먹었다

 

톡톡 터지는 투명한 가재 알들에서

갓난 내가 기어 나오고

각자의 태몽을 안고서 흘러간다

물방울 되어 튀어 오르는 몽에 대한 예지

한날한시에 태어난 다른 운명의 손가락

눈물 흘리는 솜털들

나이테에서 태어난 다리에 주름 많은 새들이

내일이 말린 두루마리를 물고 올 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점괘엔

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는 사람.

 

2011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 

쉿! 고은희

 

아득한 하늘을 날아온 새 한 마리

감나무 놀랠까봐 사뿐하게 내려앉자

노을이 하루의 끝을 말아쥐고 번져간다

 

욕망이 부풀수록 생은 더욱 무거워져

한 알 홍시 붉디붉게 울은을 터트릴 듯

한 쪽 눈 질끈 감고서 가지 끝에 떨리고

 

쉬잇!쉬 잠 못드는 바람을 잠재우며

오래 전 친구처럼 깃털 펼쳐 허공 감싼다

무너져 내리고 싶은 맨발이 울컥 따뜻하다

 

<심사평 : 이근배 심사위원>

글감 찾기에서 틀 만들기까지 오늘의 시조는 잰 걸음을 하고 있다. 신춘문예에 이르러서 그 촉각은 더욱 날을 세워 밀어내기를 하고 있어 읽는 즐거움이 크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도 늘었거니와 기성 시단의 눈금과 맞서거나 넘어 서는 잘 구워진 작품들의 수도 불어나서 왜 시조인가에 대한 명료한 답을 듣기도 한다.....9중략).....당선작 '쉿!'은 언어와 사물을 포착하는 감각부터가 산뜻하다. 감나무에 내려앉은 새 한 마리의 동작과 시간성이 살아 움직이고 '욕망이 부풀수록 생은 더욱 무거워'같은 에피그램도 '한 알 홍시'에 얹혀 단맛을 낸다.

시조의 형식을 어김없이 지키면서 자유시의 그것보다 더 자유롭게 시를 끌어올리는 힘

앞으로 큰 몫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2011

커피포트- 김종영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비등점의 포말들

음이탈 모르는 척 파열음 쏟아낸다

적막을 들었다 놓았다

하오가 일렁인다

 

선잠을 걷어내어 베란다에 내다건다

구절초 활짝 핀 손때 묻은 찻잔 곁에

식었던 무딘 내 서정

여치처럼 머리 든다

 

설핏한 햇살마저 다시 올려 끓이면

단풍물 젖고 있는 시린 이마 위에도

따가운 볕살이 내려

끓는점에 이를까

 

경남신문 2011 신춘문예 시 당선작

마드리드 호텔 602호- 이재성

 

독한 럼주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급선원들이 돌아온 바다와

떠나갈 바다를 위해서 건배를 하는 사이

호텔 602호는 마스트를 세우고 바다 위에 떠있다.

아니 이미 항진 중인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허무, 낡은 시집의 행간, 해무는 같은 색이다.

점점 깊어지는 밤의 해무

수시로 무적이 길게 혹은 짧게 울리고

J는 아직 조타륜을 잡고 자신의 바다를 항해 중일 것이다. 조타실의 문을 열자

바다 속에서는 해독할 수 없는 안개가 타전되고

나는 이미 길을 잃은 한 척의 운명

해도를 펼쳐 북극성의 좌표를 찾는다.

J도 이 바다를 떠나 희망봉을 찾아 갔을 것이다.

스무 살, 바다를 잡을 때마다

늘 빈 손바닥이었다.

지금도 바다는 나에게 오리무중이다.

늙은 고양이가 친숙한 비린내를 풍기며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안녕, 이 하룻밤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안녕, 나도 사라질 것이다.

J가 누워 있던 침대엔

낡은 바다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이번 항해가 길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무사히 귀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드리드 항에서 이 호텔은

항해사들로 이미 만원이다.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는 없다.

 

경상일보 2011 신춘문예 시 당선작

팔거천 연가-- 윤순희

 

여름밤 내내 *팔거천변 돌고 또 돌았습니다 아직 물고기 펄떡이는 물 속 물새알 낳기도 하는 풀숲 달맞이꽃 지천으로 피어 십 수년째 오르지 않는 집값 펴지기를 깨금발로 기다리지만 대학병원 들어서면 3호선 개통되면 국우터널 무료화 되면 하는 황소개구리 울음 텅텅 울리는 탁상행정 뿐입니다

 

풀숲에서 주운 새들의 알 희고 딱딱한 것들 날마다 수성구를 향하여 샷을 날려 보내지만 죽은 알들은 금호강을 건너지 못하고 팔달교 교각 맞고 튕겨져 나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강을 건너지 못하면 저 물새들 살얼음 낀 물속에서 언 발 교대로 들어 올렸다 내릴 텐데

 

환하게 타오르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의 불빛 온기는 어디까지 번져 갈 것인지요

물새들의 울음소리 팔거천 가득 울려 퍼지는 날 낮달 같은 새댁들 강변 가득 붉은 나팔 불며 여덟 갈래 꿈꾸며 비상 하겠지요.

(*팔거천 : 팔공산 자락에서 흘러든 여덟 갈래 물줄기가 합쳐져 대구의 강북인 칠곡 신도시를 거쳐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달집태우기 행사를 한다.)

 

농민신문 2011 신춘문예 詩부문

환한 휴식 / 변경서

 

낡은 장화 한 켤레가 마당귀에 나와있다

기미낀 콧잔등이 오독(誤讀) 이 아니었다

뒷굽은 삐딱하지만 반듯한 냄새였다

 

젊음을 증언하던 문서들은 필요 없다

오로지 주인 위해 논밭을 밟고 온 길

어둠은 별을 불러와 생채기를 다독였다

 

시드는 걸 생각하며 피운 꽃이 있었던가

아낌없이 다 준 삶이 눈부시게 빛이 나네

환하게 앉은 그 자리 달빛도 쉬고 있다.

 

???? 시조의 형식????????

초장3.4 3.4중장 3.4 3.4종장3.5 4.3.

이은상 선생의 ‘성불사의 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자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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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지는 약속한 날을 어기는 것을 보니 또

글을 싣지 못하는 나름의 할 일들이 남아 있나보다.

어제는 1월 1일 신춘문예 발표날 신문사에서 그러데.

그 날은 작가들이 등단 하는 날이라고....

신문가판대의 신문은 아침부터 동이나고...

집으로 배달된 일간지 두 보 나를 절망 케한다.

 

어줍은 글로 문을 두드렸나 시대를 못따라가나

문장을 따르지 못한 내 무식인가.

동문선의 번뜩이는 글도 아니고 읽고 가슴팍을 파고드는

애절함도 없는 글을 평하는 사람과 이에 이끌리는 우마와 같은 조류들....

아무도 말이 없구나 .

정형시도 아니면서 산문과 경계도 불분명하여 자유시라지만

이것 혹자들이 마음대로 하는 자유라서 이름지은 자유로운 시라는데 내용이라고

시의 형체도 아닌 글을 신춘문예 허울로 잔치를 한다.

누가 한번 읽고 느끼고 감동을 받겠는가.

이 시대에 정말 시 같은 시는 없다. 

심사하는 시인은 자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해

나는 인터넷으로 그 들의 일면 시를 읽어본다.

그기에도 한 줄 외우고 싶은 글이 없다.

시인이 가진 기질도 없으니 나는 그들의 시를 읽을 수 없다.

읽고도 느낌이나 내재된 운율도 모르겠다.

아! 이대로 시문은 닫히는 가....

글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이 어찌하랴.

기득권에 있는자들이 어지럽히는 일을  한국사의 문예사조를

어찌 그 유명한 시들을 읽지 못했는가.

어찌 그 만한 인재 발굴을 이상한 섹트에 묶으려 하는가.

비린내 나는 이 잔치가 안타갑다.

한줄만 읽어도 천리를 달리고 우뢰번개가 이는 따끔한 시

올해도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시는 정지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