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는 인 두껍을 쓴 축생

두무동 2009. 5. 8. 16:35
나는 인 두껍을 쓴 축생

 

어버이날은 5월 8일 평일이라서 전 토요일을 택해 어머니를

찾아뵙고 왔습니다.

마트에서 음료수와 참외를 사 들고 갔다가 돈 몇 푼 집어주고

오면 우린 자식의 도리를 다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년중에 하루라도 부모님의 은공을 생각하고 못한 효를

다 하라고 하는 어버이날이라 하네요.

꼭 이날이 아니라도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전화를 해서 못자리는 어떻게 되었냐고 날은 안 가물었느냐고

병원에는 다녀왔냐고.물을 수 있는데 이날 하려고 미루었다가

전화를 하면 전화를 안 받습니다.

시골 노인네는 어버이날을 달력과 제대로 맞추어 기다리지도

않는 것을 잘 아는 나는 벌써 해가 뜬지 언제인데 출근 할 때 생각나서 어버이날이라고

전화한단 말인가.

 

군에 간 민통선에서 철책 근무하는 놈을 두고 나는 낮에 집 사람에게 전화해서 묻고는

전화도 안 하는 고약한 놈이라고 군담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바쁘면 시골에 가서도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밭일을 하시다가

아들놈은 시원한 행색으로 사랑마루에서 신선 노름하는 줄도 모르고 

점심을 챙겨주려고 오셨네요.

 

그때는 내가 있어서 밥상에 그래도 따뜻한 된장국을 끌여서 상추쌈에다 나물 반찬도

몇 올리고 간에 저린 생선도 보였는데.

갑자기 찾아가서 부엌을 보면 반찬도 없고 밥도 전기밥솥에 말라서 있습니다.

다달이 생활비 용돈 부쳐주니 일도 하지마시고 집에만 있으라고 합니다.

나는 그 용돈이 많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돈을 한 푼도 쓴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돈 뭉치를 내 놓으시면서 그동안 모은 돈이라고 가져가라고 합니다.

지금도 돈은 차곡차곡 저축을 하나봅니다.

 

우리집이 아파트라 한번 와보시고는 창밖 아래를 내다보니 어지럽고 심심해서 못 있겠다고,

그리고 교통도 불편한데다가 글을 몰라 차를 타기 어려워 못 오십니다.

나는 자가용으로 잘도 다니기에 늘 어머니께는 한번 다녀가시라고 말로만 합니다.

내 나이 서른이고 어머니 연세 오십 셋 되던, 지금 내 나이와 같은 해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그 큰집과 농사일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고 사시는 우리 어머니.

부지런하기론 말도 못하시고 억척이신 울 어머니는 지금 시절에 나이라면

홀로 사시질 않으실 분인데 자식들한테 간섭하는 일과 초목과 수초가 시키는 일에만

열중하다 이젠 무릎이 다 닳았다고 갈 때 마다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 것도 노인병이니 일만 하지 말라하고, 링갤 주사 하나 놓아주고는

그 다음 대책은 없이 집을 훌쩍 떠나오곤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모시는 반만큼 자식은 따른다고 합니다.

 나는 이러고도 자식한테 거는 기대가 엄청 큽니다.

 군에 간 놈보고도 공부해라 친구들과 잘지내라, 온갖 잔소리를 다 해대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다 이러해서 부모로도 자격이 없고 자식으로도 도리를

 다 못하는 그져 인두겁만 둘러쓴 그 옛 날 초등생 때 파를 안 먹는 소이야기에 나오는 

 말 안 듣고 두발달린 축 생이나 다름이 없는 그런 불효자로

 오늘 또 어버이날을 맞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