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날의 이야기
- 김 명 현 -
1.무 논의 물몰이로 써레가 뺑바퀴를 돌 때마다
제비가 풍덩풍덩 물배미를 먼저 적시고
물이 넘치고 소 입김에 풀도 시들어 논두렁의 풀이
단정해 지던 날, 물고가 넘칠만큼 가득 실은 논으로
모판의 노란 모가 머리를 틀고 시집을 갔다.
2.앞 두름의 콩이 싹트면 손 뺀 논바닥이 궁금해 모시옷을
차려 입은 농부는삽괭이를 허리에 게으르게 둘러메고
들판을 거닐고 어린모가 땅내를 맡을 즈음에는 마굿간에
소꼴을 한 지게 베놓고 장 갈치 두어마리 사고
술을 한 잔해야 그해 봄 추수는 끝난다.
3.청록으로 옷을 갈아입은 해지는 들판은
와공(蛙公)들의 저녁제로 들판이 시끌벅적했다.
마을 어귀의 정자아래는 남녀노소 없이 손에
부채를 들고 앉으면 낮 동안의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매미소리에 바람이라도 살짝 불면
어른들의 말씀은 잘 들리지 않았다.
4.막걸리 심부름 간 동수는 주전자 뚜껑을 밤길에
잃어버려서 찾느라고 2차 선발대가 명을 받았다.
쑥대연기 모깃불이 잦아지면 어른들은 부채로
장딴지를 치며 모기 탓을 하다 초저녁잠이 많으신
차래대로 자리를 뜨셨다.
5.하지가 지날 때 즈음의 아침은 아이들에게는 새벽이고
어른들에게는 해가 중천에 뜬 아침 이였다.
늦잠 자는 상열이는 엄마가 깨워서는 일어나질 않아
늘 아버지의 불호령이 있어야 눈을 비비며
소를 몰고 앞산으로 갔다.
6.장마가 기승을 부리다가 황톳물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냇가의 차돌은 햇볕을 받아 반질반질해졌고 웅덩이
투명한 물은 논을 매던 농부가 점심때를 맞추어
코끝이 맵도록 멱을 감기도 좋았다.
7.어른들이 모이는 곳에서의 이야기는 노소가 없었는데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아래가 있어 늘 행동에 조심이 따랐다.
청년들이 정자나무를 등지고 옹기종기 앉은 모습을 어른들은
보고도 모른척 했다. 그 것이 예인 줄 몰랐다.
8.장기판이 물어익을 때쯤에는 동내에서 순위가 위이신
할아버지께서 지팡이를 짚고 구경을 하시는데.
장기두다 어디간 어르신은 담배생각이 간절하다.
궁리로."어르신 염소가 상추를 다띁어먹고 있습디다."
『 염소가 상추를 뜯어 묵어?? 어음! 고얀. 』할아버지는
자리를 떠시고. 어르신은 그때야 담배를 입에 무셨다.
9.높은 버드나무에서 왕매미소리가 바람을 탈 때면
동내 큰 길가의 이발관에는 비눗물 거품을 바른 채
어른들은 낮잠을 즐기느라 이발관의 의자는 비좁았는데
낮 하루를 다 보낸 해거름에야 바지게를 짊어지고
낫질이 쉬운 논두렁에 푹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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