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業報

두무동 2010. 9. 26. 02:27

   

   

業報

 

어릴 적에는 할머니 등에서 엎혀 자라서도 업보라는 말은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이불을 따독거려주시며 아랫목으로 자리를 내어주시고

시장가시는 날 돌 사탕봉지를 꼭 잠자리에서 펼쳐주시던 그때는

나에게 주어지는 업보가 책임이란 걸 몰랐다.

내가 귀엽기만 했겠습니까만, 큰 손자라서 예쁘기만 했겠습니까.

작은 손자들 줄줄이 보아도 성에 다 차지 않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생은 어려움 투성이 이였었다.

끼니도 거러던 날이 부지기수 시장에서 점심국수도 한 그릇

안하시고 풀빵을 사서 봉지에 싸서 십리 길을 걸어서

보따리 짐에 챙겨주시던 그 뜻, 이렇게 큰 업보로 다가올 줄 몰랐다.

제사는 안 지내면 된다지만 나는 교회를 가지 않는 한 그렇게 할

용기가 없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분이

생전에 하시던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혹자들은 일을 줄이고 간소화 한다지만,그럴 용기 또한 없다.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고

집안의 잘 하는 일도 못하는 일도 다 내 탓이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사촌들이 들려서 "형님 이제 이 윗대의 벌초를

줄이면 안 됩니까.아버지는 내가 책임지고 설득을 하겠습니다."하고

말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삼촌이 무섭지 않다.

늘 가슴에 담고 있는 이야기지만 나를 감싸주던 사람은

이미 세상 밖의 사람이 다 되었을 뿐 나의 길에 도움이 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 분들의 의견을 오래전부터 무시해 버렸다.

그 분들은 차남들이 누리는 해택을 누릴 만큼 누린 사람이고

지금도 그대로 하지만 어른처럼만 대하려고 합니다.

추석에는 할아버지,설에는 할머니, 명절이 지나면 잇따라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어야 한다.

아버지도 비슷하시어 명절을 쉬고 나면 마음을 더 바쁘게 합니다.

어매가 날마다 밭을 매던 뒷골의 밭은 날 짐승들이

차지하고 있다가 퍼드덕 거리며 대밭으로 달아나고

먹다가 남겨둔 옥수숫대는 진드기가 다 침범했다.

올 추석에는 살갑게 대하지도 않는 어머님이 병원에 게시니

장남차지가 되어오던 제사장 이지만 푸성귀와 떡 문어정도는

어머니 몴 이였는데 고사리도 챙기고 늘 달려 있던 율시들도

내 손을 빌지 않고는 제사상에 오르질 못했다.

밭가의 울타리에는 목발 없는 지게와 우거져있는 도라지 밭에는

산 짐승들이 드나들며 반타작을 해 놓았다.

주인 인듯 나그네 인 듯한 내가 심은 무 배추씨는 밭머리에서

대 뿌리가 깊게 파고들어 땅을 일으키지도 못할 정도로

죽순의 뿌리는 깊었다.

어머니가 안게시면 누가 이 집을 끌어안고 있을 것인가.

"쓰러지면 잔디나 심어 놓지 그리고 맨 도란 돌에 멋진 시나 써놓아야지.....

" 나의 꿈은 설레발부터 먼저 치고 있다.

누가 이 먼 거리에 와서 잔디를 가꾸며, 반기는 사람도 없는 곳에

정 붙이기가 쉬운 일이겠는가.

아직은 시간이 좀 있다지만 사랑채는 처마가 물러 앉아 수리조차

힘들게 되었는데. 집 앞 문화제 탓을 하며 미루고있다.

빗소리를 듣고 잠을 깨 비닐로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먼 산의 그림자는 검고, 앞산 구봉산 시루의 해는 구름을 몰고 온다. 

방도를 세우지도 못한 답답함에 나는 밭으로 가지 못하고

나의 업보는 굵은 저 대들보가되어 사랑채 청 마루에서

밤세도록 무겁게 추석날 아침이 밝아온다.

 

 

추석이 몇일 지난, 팔월 열아흐랜 날

오늘은 할아버지 제삿날

대목를 갖 지나 생물이 끊겼을 

제사장을 보러 큰 장을 찾아간다.

 

산채 나물도 귀한 집에서 짐을 싸와서

문도 활작 열고 밝으시라 전등을 사방으로 밝힌

시골집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먼저간 아들도 아직 남은 아들도

둘 다섯 딸도 둘이나 의당

 

객지에서 온 맏이장손, 한참이나

배웅 절을 하다 말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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