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줄 창작 마당

떠나가고 있습니다.

두무동 2009. 9. 17. 07:21


 

 

 떠나가고 있습니다 -김명현-

 

날궂이 여름 장마는 구름 비를 따라 자취를 감추었고

와명선조의 합창들이 사라진 공원은 조용함이 적적한데

어느새 계절은 가을의 한복판으로 들어와 나무들이

벗어던진 옷들은 비로 쓸기에도 버겁게 떠나가고 있습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누군가 뱉은 농담이 진담처럼

느껴질 때면 자동차 속에서나 보는 빌딩 숲과도 같이

급히 지나가는 내 삶의 한 토막도 너무 막연해 보여서

계절 바람에도 맥을 못추고 가슴이 아리는지 모릅니다

 

 물어 익어 붉기도 하고 노랗기도한 저 가을의

색소와도 같이 나도 중년의 색으로 물들고 싶지만

이제까지 철철이 다가오던 계절에 무심히 따라 주던 나는

오늘 그 계절의 바람에 맞서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혜안을 어지럽게 하던 아름다움들은 다 바람 같은 것들로,

사라져간 계절을 따르는 순간 가을 속으로 들어서버린 나는

엷던 주름이 더 깊어지는 계절 앞에 돌아갈 수 없는

중년의 한 남자로 되어 있습니다.

살아가는데 급급해 황금 같은 불혹不惑 지나 지천명知天命의

천운天運이 앞에 와 있는데 호주머니 속에나 잘 보관하고 싶은

낡은 추억이 유난히도 가슴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백로白露가 지난 밤길을 바람이 숭숭한 가슴으로 걷다가

소주라도 한잔 걸치면 이 가을을 좀 피해 가려나 싶어

약속도 없는 술집에서 가을속의 한 남자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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