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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꽃 이야기

두무동 2009. 5. 14. 18:04

           

  

여름 꽃 이야기    ~명 현~ 

 

   
배고프면 따먹던 꽃잎이라 새삼스레 맛이 궁금해서

한번 따먹어 보면 떼 국물 추억이 겁나 울고 말았지.

그동안 산해진미를 다 음복한 내가 참 행복했었는데,

그 꽃도 내가 다니던 길 습에는 소꼬리가 자주 건드려

많이 따 먹지도 못하던 찔레꽃이 아닙디까.

  

돌 언덕 아득한 곳에는 산딸기가 덤성덤성 있었는데

그 덩쿨은 쓰다듬지 못할 가시라

팔뚝에 끍힌 자국으로 왼손주먹 소복이 공들여 따 모아

한줌이 되면 잎 큰 망개잎을 깔고 덮어 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설탕도 넣고 소주도 한 병 부어 담군지 오랜데

괜한 짖을 한 것 같아 한숨 짖고 마는 지금의 내가 아닙니까.

   

햇살은 따갑고 아침 이슬에나 물방울 구경 하던 돌 썩비럭

두 갈래 언덕길에 

발길을 놀게 하던 한 두 잎 핀

패랭이,

축 늘어진 어깨로 너를 보던 시절은 옷에 풀을 먹이며

나를 가다려 주시던 할머니가 게셨는데,

지금은 변종되어 화분에서나 보는 너의 모습은 아련하다만

이미 나는 너를 괴롭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닌 것 아니더냐.

    

젯개미 화로도 못 다스리던 명치 밑의 속병 뭉치가 치밀어 오르면

방을 기며 아파 하시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쌈지 주머니에 고약 봉지처럼

몇 겹이나 싸서 감추어 게시던 양귀비

사래 긴 언덕 도라지 밭 귀퉁이에 아무도 몰래 심어셨는데

꽃피는 걸 보고 나에게 들키셔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시며 “비밀을 지켜주는 댓가”라고

할아버지는 시장가시던 날 꼭 돌 사탕을 사주시며

이불도 따독거려 주시던 할아버지의 조제약방의 단골이 아닙디까.

 

돌담으로 둘러싸인 울 넘어 화단에는 장미능쿨

새끼줄에 묶여있는데

보리타작 마당을 한번 거둘 때는 도리깨에 멍이 덜고

끄꺼러운 먼지를 덮어쓰고도 그 붉기는 자색보다 진한 핏빛이 아닙디까.

 

못자리용으로 쓰다 남은 짜두리 대를 쪼개서 아치울타리를

만들면 분꽃이 먼저 올라타고 나팔꽃은 줄을 지어

아침저녁으로 대(竹)울타리를 다투어서 장식하던 그 여름날에

가꾸고 가꾸던 앞마당 화단에서나 피던 덜 붉은 꽃이 아닙디까.

 

숨바꼭질 할 때나 드나들며 육중한 대문을 한번 밀어보고

아이들은 왕래가 드문 재실뜰 통시깐 옆에 해마다

잘리고 잘려 가지는 더 소담스러운 수국나무는

흰 꽃 몽우리채로 옮겨 심고 싶던 사랑채의 주인이 아닙디까.

 

제자리에 그 꽃들이 있고, 잊혀진 옛 사람들과

해긴 여름날 한번만나 막걸리라도 한잔 해봤으면 .....

  

석류꽃 감꽃이 떨어지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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