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꽃 이야기 ~명 현~
한번 따먹어 보면 떼 국물 추억이 겁나 울고 말았지. 그동안 산해진미를 다 음복한 내가 참 행복했었는데, 그 꽃도 내가 다니던 길 습에는 소꼬리가 자주 건드려 많이 따 먹지도 못하던 찔레꽃이 아닙디까. 돌 언덕 아득한 곳에는 산딸기가 덤성덤성 있었는데 그 덩쿨은 쓰다듬지 못할 가시라 팔뚝에 끍힌 자국으로 왼손주먹 소복이 공들여 따 모아 한줌이 되면 잎 큰 망개잎을 깔고 덮어 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설탕도 넣고 소주도 한 병 부어 담군지 오랜데 괜한 짖을 한 것 같아 한숨 짖고 마는 지금의 내가 아닙니까. 햇살은 따갑고 아침 이슬에나 물방울 구경 하던 돌 썩비럭 두 갈래 언덕길에 발길을 놀게 하던 한 두 잎 핀 패랭이, |
축 늘어진 어깨로 너를 보던 시절은 옷에 풀을 먹이며
나를 가다려 주시던 할머니가 게셨는데,
지금은 변종되어 화분에서나 보는 너의 모습은 아련하다만
이미 나는 너를 괴롭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닌 것 아니더냐.
젯개미 화로도 못 다스리던 명치 밑의 속병 뭉치가 치밀어 오르면
방을 기며 아파 하시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쌈지 주머니에 고약 봉지처럼
몇 겹이나 싸서 감추어 게시던 양귀비를
사래 긴 언덕 도라지 밭 귀퉁이에 아무도 몰래 심어셨는데
꽃피는 걸 보고 나에게 들키셔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시며 “비밀을 지켜주는 댓가”라고
할아버지는 시장가시던 날 꼭 돌 사탕을 사주시며
이불도 따독거려 주시던 할아버지의 조제약방의 단골이 아닙디까.
돌담으로 둘러싸인 울 넘어 화단에는 장미능쿨이
새끼줄에 묶여있는데
보리타작 마당을 한번 거둘 때는 도리깨에 멍이 덜고
끄꺼러운 먼지를 덮어쓰고도 그 붉기는 자색보다 진한 핏빛이 아닙디까.
못자리용으로 쓰다 남은 짜두리 대를 쪼개서 아치울타리를
만들면 분꽃이 먼저 올라타고 나팔꽃은 줄을 지어
아침저녁으로 대(竹)울타리를 다투어서 장식하던 그 여름날에
가꾸고 가꾸던 앞마당 화단에서나 피던 덜 붉은 꽃이 아닙디까.
숨바꼭질 할 때나 드나들며 육중한 대문을 한번 밀어보고
아이들은 왕래가 드문 재실뜰 통시깐 옆에 해마다
잘리고 잘려 가지는 더 소담스러운 수국나무는
흰 꽃 몽우리채로 옮겨 심고 싶던 사랑채의 주인이 아닙디까.
제자리에 그 꽃들이 있고, 잊혀진 옛 사람들과
해긴 여름날 한번만나 막걸리라도 한잔 해봤으면 .....
『 석류꽃 감꽃이 떨어지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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