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펏던 날들

향불

두무동 2015. 10. 13. 20:24

장인어른 별세 2015년 10월 10일 새벽 일요일 아침 2시 45분

오늘 부로 나는 아버지가 없다.

친부는 나 한창 젊을 때 청년무렵에 가시고 그나마 장인 어른,

나에게는 참 좋으신분 이였는데....

가장 농땡이를 많이지던 큰처남이 술이 한잔되어 병원에 왔다.

수간호사 말은 오늘도 무난히 넘기실 것 같다며 따님 사위님은

어제저녁도 밤샘하셨으니 오늘은 아드님이 여기서 주무신답니다.

그러니 어머님 모시고 집에 가서 쉬셔도 되겠습니다.

"급한 일 있으면 집도 가까우니까 연락 드리겠습니다."

힘든 일이 아직 남았는데 체력 안배를 잘 하셔야 됩니다.

장모님을 모시고 집에 와서 3시간쯤 자는데 집 전화가 왔다.

큰처남이 엄마 모시고 급히 오란다.

5~10분 거리는 참아 주겠지 했는데 도착했을 때는 뇌파 그래프는 정지하고

호흡도 정지하고

맥박만 조금 살아 있었다

이것은 임종이 아니다.

큰아들은 술에 취해 아버지가시는 것을 지켰다.

그리고는 다 늦었다.

새벽 2시 45분 심장은 다 멋었다.장모님은 좋은 날 좋은 시에 가셨단다.

아들들은 모두 바쁜데 이날 가셨습니까.

 

의사는 자다가 도착해서 사망선언을 하시고 보훈병원 차가 와서 후송하고

3일장을 하려면 너무 일찍 도착해서 장례식장 사용은 2일만 맞추게 하기위해서

아침 9시에 다시 오란다.

장모님이 준비해 두신 영정 사진은 너무 좋다. 젊으신 모습 그대로이다.

화장실 서랍 맨위 검은 봉지에 치약 둘 가지각색의 칫솔은 상주 숫자와 맞추어

준비 해 두셨다고 단수위 괫짝속에 묘지 분양권과 국군상이용사증

또 별지 한장에는 비문에 세길 글자와 생시 장모님 성씨 생시 기록은

정갈한 한자으로 써 놓으셨다.

매사에 철두철미하셨다지만 이렇게까진 생각 못했습니다.

장례치를 돈 2천 6백만원도 별도 통장을 만들어 놓으셨다.

국군묘지에도 가실 수 있지만 자기보다 계급 높으신 분들이 많아 당신이 힘 드시다고

공원묘지에 2070년까지 공원묘지사용료를 지불해 두셨다.

자식들은 물론이고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 손자도 그때 쯤에는 나이가 80세다

기가 찰 노릇이다.

석물과 묘지준비를 위해 공원묘지에는 막내 처남과 갔다.

묘지비석에는 '자식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던 아버지라'라고 문구를 넣어 달라고했다.

화장하지 말고 매장으로 해라. 석물은 좋은 걸로 해라. 관도 좋은 걸로 해라.

돈 아끼지 말고 해라

조문객들 차비도 꼭 챙겨줘라.

소렴 대렴 절상 옷도 가장 좋은 옷으로 입으시고 영면하셨다.

자식들을 생각한 사전 준비가 이렇게 철두철미하신 어른을 나는 마음에서

놓을 수가 없다. 너무 존경스럽다.

장례도 시간 절약과 당신이 좋아하시고 국가에 녹을 받으시던 곳에서...

행동을 흩으로 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자식들을 위한 일념으로 이루신 업이

자식들의 경제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게 많이 남기시고 가셨다.

몸이 좀 약한 딸 보고는 늘 "밥 마이 무우라이" "김서방도 밥 마이 무우라이"

손자들이 자고 간 이불을 3번 접고, 4번 접고 장농에 꼭꼭 당신의 손으로 다 하시던 어르신

젊어서는 동내 일을 도맡아하시며 좋은 일을 너무나 많이 하시고 사셨던 분이라

좋으신 곳으로 가신 줄 알겠습니다.

병원에 가시기 싫으시다고 버티시는 분을 업고 병원으로 모셔서 죄송합니다.

사위란 놈은 제일 나쁜 놈입니다.

언제 또 나드리 길에 모시고 나서 보겠습니까.

세상에는 없다가도 다시 생기는 일이 많지 않습디까.

정신이 돌아오는 좋은 약 생기면 아침 해에 이슬을 틀듯 꼭 다시 돌아 오실 거라고

항상 가슴에 모시고 살겠습니다.  하나 딸 하나 사위 하나 외손, 사랑 합니다.

맏이 외손을 젖먹이 시절부터 잘 길러 주신덕택에

그 외손 동휘는 할아버지 병석에 있을 때 많이 울고 다녔습니다.

이번에도 떳떳한 사회인으로 조문기도 회사에서 보내오고 할아버지께

마지막 용돈을 준비해 와서는 많이 울었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자식들 손자들 음덕을 골고루 나누어 주시고 극락왕생하시길 빕니다.

눈물 많은 하나 딸 어쩌다가 생각이 나더라도 더는 울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허리가 굽으신 장모님 길 다니실 때 힘들지 않게 하시고

자죽자죽마다 안전한 길로 살펴주십시오.

사랑합니다. 아버님!!!!!!

병석에 있을 때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후에

지금의 세대는 예를 간소화하는데 더 신경을 씁니다.

향연기가 혼백을 따라 염습한 관을 싸고 도는데

빈소의 곡소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삼오도 안 지난 탈상을 하고 산을 내려오는 상주의 얼굴에는

부모를 잃은 슬픔보다 힘든 멍애을 벗은 마음으로 하산을 합니다.

우리의 상례문화는 효에서부터 갈 길을 잃고 공원관리법과

간소화된 가정의례의 중간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습니다.

조문은 사회생활을 하는 저로써는 항상 깊은 감동과 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곤합니다.

누구나 한번은 가는 길을 또 한번 내가 주인공이 되어 되세겨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임종까지 귀를 열고 게시던 아버님!

안녕히 가십시오.

이제는 정신없으시지 마시고 자식들 걱정도 마시고 편안하시길....

이제 우리는 훌륭하신 아버님의 손들로 생전의 영민하신 모습을

그리움으로 세기고 살아가야겠습니다.

극락천도 하시길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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