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길목에서 - 명 현 -
두 잔이면 과할 것 같은 고량주 이과두주二鍋頭酒를
엇 저녁에 한 병이나 마시고 기절했다가 아침에 살아나니
술에 약한 체질이 또 한 번 담금질 되었다
낮에는 여름날씨 같이 무더위가 화로처럼 뜨겁다가
기성을 부리던 모기의 입은 비뚤어지고 아침저녁이면
찬바람이 불어 가을 남자의 뒤숭숭한 가슴을 파고든다.
산골에서는 처서머리 도구를 치고 뒷물 끊기면 벼는
가을 햇살에 몸통이 부풀고 콩잎 옥수수잎 깔겨 늘린
새추거울 더미위로 잠자리들이 때지어 날고 있을게다.
산꼭대기에서 열을 식히고 내려오면서 또 땀을 흘리니
등지게 남방속에 튀어 오른 어깨위로 가을바람이
헤집고 지나가고 있다.
푸른 엽록소를 내 뱉은 가을 산은 꽃 진 자리에서 밑이
돈 열매를 떨구고 북이 높은 고추 골에 앉은 어머니는
밭으로 내려오는 꿩들과 실강이를 하다
붉은 고추가 물러지고 있을게다.
머리위의 하늘만 하늘이 아닌데 멀리 보이는 것은
가을만도 아닌 것이 자꾸 고향 하늘에서 눈길이 머무는 것은
바쁘다고 여름이 다가도록 집에 한번 가지 못한 마음 때문에,
김매던 밭에 호미를 그대로 두고 저녁 길을 걷고게실
어머니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