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정실습 하던 날

두무동 2012. 6. 14. 15:56

 

가정실습 하던 날 

       김명현

 

비리한 밤꽃이 필 무렵 시골 학교는

일주일동안 가정실습(지금은 춘계방학)을 한다.

옛날의 시골은 일철이 닦아오는 가을과 봄에 학생들도

가정의 일을 도우라는 취지로 방학을 했는데 미성년자인

국민학생(초등) 중학생들도 일철에는 일을 해야 했다.

 

방과후 집으로 오는 길에는 도랑에서 멱을 한번씩 감는데

가정실습을 하는 날은 집에 가기가 싫어 도중에서

오래동안 놀다가 갔다.

 

일철 시골은 타작마당에서는 죽은 영장도 일어나서

돕는다고 어른들의 말씀 때문에 보리를 벤다던지

새참을 가져다 나르는 일들을 했는데

타작을 하는 날은 보리 무더기를 기계 옆으로 가져다 놓기

또는 보리대를 치우는 일등 여러 가지일들은

어린이들을 괴롭혔다.

 

소를 먹이는 일은 그 중에서도 쉬운 일에 속했는데 그때는

꼭 가정실습을 마치고 등교하는 날 학기말 시험을 치렀는데.

공부를 좀 하려고 책상에만 앉으면 밤 호롱불은 눈을 어찌도

그렇게 졸리게 하던지.....

 

소를 멀리로 풀을 뜯게 하고 단어장이라도 보고 있으면

동내는 '소가 밭에 들어 뽕잎을 먹는다고'

산이 쩌렁쩌렁 울릴정도로 야단이다.

밤이면 소를 잘 못 본 탓에 꾸중을 한참이나 듣고

잠을 자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가정실습을 하고 귀가하는 날은 또 학교 서무계에서

학비를 내라는 독촉장을 쥐고 왔다가

가방에 넣어 둔체로 가사돕기를 하고 등교 때 아침에

어머니께 회비 이야기를 하지만 늦게 이야기 한다고

야단을 맞는 일이 일수였다.

 

누에를 쳐서 면사무소에 공출을 하고나면 그 돈으로

회비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집안 사정도 눈치를 봐야하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일과 노동 그 자체였다.

 

내 청춘이 시작되던 그 중학교 학창시절까지

걸어서 십리를 다니고 형이 있어 놀 수 있고 마음데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장통의 친구들이 부러웠다.

  

가정 실습 때는 시험공부를 많이 할 수 있고 등하교를

자갈 흙 먼지가 이는 길을 걸어서 다니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래도 평소 실력으로 치는 시험을 치고 귀가하는 날은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방앗간에서 밀국수를 만드시느라고 산을 넘어오신

어머니와 만나

지금은 포장을 하고 길이 곧게 교정도 되었지만

돌부리를 채며 도랑을 건너던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녹음이 짙어 졌다.

올해에 처음으로 매미소리가 들리기 시작을 했다.

아픈 것 같은 옛 여름날의 추억은 가정실습을 하던

그 날부터 문명이 바뀐 지금까지 고스란하다.

2011.06.15

THE POWER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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