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 김명현-
일망무제[一望無際] 출렁이는 아득히 먼 하늘에
어머니가 그립거든
광목치마 두른 눈덥힌 덕유산으로 가시라.
'푸르른 나무에는 빨간색 노란색 꽃들이
색색으로 피는데 왜 나의 꽃은 없는가'
신세를 탓하는 자여
몸과 꽃이 일색인 덕유산의 꽃 선물을 받으러.
인생의 곡절이 얼룩진 사람이나
삶이 막막하여 앞이 안보이는 사람은
훤하기만한 앞을 한번 보러오시라
산이 나를 품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집도 절도 없는 가난한 향적봉의 눈신령이 되어
한없이 청렴한 눈 밭으로 들어가보시라
얼어서 죽을망정 백년을 묵은 주목을 보며
절도있는 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
우엉잎 부각한 새하얀 광목으로 가시라.
눈길에서 동행자가 친구를 삼자하면
평소에 내려 놓지 못한 티눈같은 자존심을
구천동 계곡에 두서없이 내려놓고
지나친 음주로 밤잠을 설쳐도 좋소.
툭하면 나그네를 사랑하고
주목에게 슬픈 약속을 잊고야하는
고약한 부랑자로는 아니 간만 못하니
덕유산에 눈을 밟으려면 이만저만한
사유를 하나쯤 가지고 갔다가
눈밭에 한사코 내려 놓고 가시라.